High an appreciative eye

난 축구의 광팬은 아니다.

K리그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도 아닐 뿐더러
경기장에 찾아가 본 적도 없다.
박지성 나오는 경기를 라이브로 보지도 않는다.
프리미어리그엔 더욱 더 관심이 없다.

그래도 난 축구를 좋아한다.

선수들의 동향이나, 소식 같은 것을 챙겨보기도 하고
가끔 온갖 사이트를 뒤지며 유망주에 대한 소식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엔 나름대로 스쿼드를 짜보기도 한다.
'지식'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울 만큼의 정보지만
나름대로 해외축구 소식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 네티즌들이 싫다.


그들은 요구했다.
황선홍, 홍명보. 2002년 한국을 들끓게 한 그들의 은퇴이후에
국가대표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요구는 정당했다.
그래서 새로 대표팀을 맡은 허정무 감독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 결과로, 이번 칠레전 경기에 새로운 얼굴이 많았다.

새로운 얼굴이 많다는 것은, 그들이 A매치에 능숙하지 않은 '병아리'라는 것이다.
아무리 리그에서 날고 긴다 할지라도 그들은 경험이 부족한 선수이다.
실제로 칠레전에 뛴 선수 중에
축구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알 만한 선수는 몇 명 없었다.
박주영-김남일-이관우-정조국-김병지.
박주영, 이관우도 마찬가지지만, 그 외의 선수는 거의 경험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이번 평가전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답답했다. 화려한 돌파도, 깔끔한 패스도, 날카로운 센터링도 없었다.
게다가 미숙한 볼 트래핑, 종종 터지는 백패스, 어이 없는 패스미스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아직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들이라는 것을.

네티즌들이 거의 '신'으로 추앙하는 박지성, 이영표.
이런 선수들은 과연 처음부터 날아다녔을까? 당연코 대답은 'No'다.
그들은 리그전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노련한 감독 밑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대표팀으로서 월드컵에서 활약하고,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히딩크는 과연 처음부터 국민의 영웅이었을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히딩크의 별명은 오대영이었다.
하는 경기마다 5:0으로 진다는 데서 붙여진 그 별명은 꽤나 많이 인구에 오르내렸다.
결국 히딩크 쫓아내라, 감독을 바꿔라. 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고, 견뎠다. 그리고 선수들의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몇 년. 히딩크는 4강 신화를 이루어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박원재'를 비롯한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싫다.
수비수의 예를 들자면, 곽태휘, 조용형은 A매치 첫 경기였다.
유일하게 A매치 경험이 있는 조성환도 단 2차례 출전 경험이 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MF 황지우와 박원재 선수도 A매치 첫 경기였다.
그들은 이제 '경험을 쌓기 시작한' 선수들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바라는 것 처럼 '화끈한 공격 축구'를 보여주긴 힘들다.
칠레, 절대로 약한 상대가 아니다.
굳이 경기 전의 선수단의 상황 같은 것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세대교체'이후 첫 출범이라는 점에서 과연 그들은 '못' 했을까?

우리나라의, 흔히 '팬'이라 불리길 원하는 '그들'은 두 가지 잘못을 하고 있다.

첫째, 기다림이 없다.
그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대표팀으로 나온 선수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
예로, 박원재가 수비수 돌파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가 많이 나온다.
수비수 하나 못 제치고 무슨 국가대표냐? 라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하지만 칠레의 수비도 국가대표이다. 게다가 절대로 '약하지 않은'.

그들은 선수의 성장을 기다리지 못한다.
무조건 호날도, 베컴처럼 화려한 돌파와 정교한 프리킥만을 원한다.
화끈한 공격축구가 아니었기에, 경기에서 패배했기에 그들은 욕한다.
우리의 선수들이 호날도, 베컴처럼 성장하길 기다리지 않고
무작정 그들은 욕하는 것으로 그들은 분을 푼다.
당연히 욕을 먹은 선수들은 재기가 힘들다.
한 예로 앵커형 DM이었던 김상식 선수.
국내에 몇 없는 '꽤 하는' DM이었던 김상식 선수였지만,
수비진이 취약해 공격은 안하고 수비에만 전전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불운의 선수.
네티즌들은 전략을 생각하지 않았다.
2DM이라는 수비형 체제는 생각치도 않고 공격의 부재와 실수로 선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후에 김상식 선수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미친 듯이 몰아붙여서 히딩크를 몰아냈었다면
과연 한국의 4강신화(게다가 당시엔 홈ADV마저 막강했던 상황이었다)가
이뤄질 수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난 다시 한번 아쉬움을 표한다.
박원재, 곽태휘, 황지우 선수를 비롯한 유망주들이
'성장'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면,
과연 한국 축구에 미래가 있을까?

두번째, 제목에도 나타냈지만, 그들은 높은 안목을 지닌다.
이 점에 있어서 난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행과, 언론의 박지성 띄우기가 싫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면서
한국민들의 축구(프리미어에 치중된) 관심은 꽤 높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K리그가 아닌 프리미어 리그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들은 맨유를 비롯한 프리미어리그 팀들을 보며 '잘 하는' 축구에 열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프리미어리그'가 그들의 기본적 안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선수 몸값이 K리그 팀의 예산을 훨씬 뛰어넘는 리그를 보다가
K리그를 보면 당연히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K리그를 외면했고, 프리미어리그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인기를 잃은 K리그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고,
자연스레 한국 축구는 침체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대표경기를 볼 때, '프리미어리그의 안목'으로 경기를 본다.

애초에,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그들은 호날두의 화려한 돌파와 루니의 강력한 슛, 존 테리의 탄탄한 수비를 기대한다.
하지만 지원도, 관심도 열악한 K리그에서 그런 선수들이 나오긴 쉽지 않다(불가능하다).
자연스레 국가대표 경기는 '못하고', '재미없는' 경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위 두 가지 이유로, 국가대표의 실력은 하락 할 수 밖에(해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악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재미 없으니 안보고, 욕하고. 안보고 욕하니 점점 재미 없어 지고.
박주영 때도 마찬가지 였다.
'스타'급 선수가 나타난 것에 대해 언론은 미친듯이 '찬양성' 기사를 써 댔고
그들은 너도나도 박주영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박주영에게 슬럼프가 닥쳤고, 언론은 그를 버렸다. 그들도 그를 버렸다.
그가 슬럼프를 탈출 하기 까지 기다릴 자세가 그들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대표에게 '화끈한 공격축구', '이기는 축구'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이기기 위해선
수비를 탄탄히 하면서 역습 혹은 주어진 찬스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수비를 탄탄히 하면 재미가 없다고 바로 비난이 날아온다.
감독들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공격을 시도한다.
(이 것이 아드보가트 감독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어설픈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수비를 탄탄히 하려고 했으나, 결국 그들에게 밀려 감독직에서 쫓겨났다)
베어벡 감독이 그런 노선에 빠져든 피해자였는데,
결국 수비도 공격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약팀에게도 패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말이 길어졌는데, 요약을 하자면
지금처럼 '바로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
찬찬히 유망주를 키우고, 그들에게 경기경험을 쌓게 해주고, 그들의 팀웍을 다져야 한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이 흐르다보면, 그들은 유망주가 아니게 된다.
그들은 어엿한 팀의 '중심'으로서 국가대표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금만 못하면 바로 '세대교체'를 외치고, 결국 성사시킨다.
그렇게 경험 없는 선수들이 나와 못하면, 그들은 선수를 매장시켜 버린다.
결국 또 다시 새로운 경험 없는 선수를 찾아야 하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덧, 김병지와 정조국이 부상으로 인해 김용대와 조재진을 수혈했다.
     하지만 6일날 있을 예선도 현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그것을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것도 진정한 축구 팬으로서의 자세인 것이다.

by 이스킨★ | 2008/01/31 23:38 | Thinking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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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안경소녀교단 at 2008/02/01 00:53
그런데 리그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를 직접 보고 A매치를 보면 선수가 잘하고 있는건지 아닌건지는 대략적으로 감이 잡힙니다.
Commented by 이스킨★ at 2008/02/01 01:41
안경소녀교단//그것이 '경험'의 차이라고 봅니다. K리그에서의 경험은 많은 선수들이기에 자기의 본 실력을 뽑아낼 수 있지만, A매치는 K리그와 다릅니다. 자신과 다른 선수와의 경기. 그리고 실력도 확연히 다르겠죠.(K리그의 팀과 국가대표의 수준을 비교할때) 그렇기에 A매치 출장수가 중요한 지표로서 활용되는 것이고(큰 경기에 대한 부담감 등에서) 아직 우리 어린 선수들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것이죠. 물론 앞으로 많은 예선과 평가전이 남아있기에 그 동안 선수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경험을 쌓을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Commented at 2008/02/01 12: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daykin at 2008/02/04 14:59
네티즌은 무슨.
대체 니가 무슨 근거로 2천만명을 하나의 생각을 가진 집단으로 몰아 붙이는건지 더 궁금하군.

세상을

'나' 그리고 '나머지'로 구분하는건 피해주의의 시작이자 과대망상증의 초기증상이지. 라는것과 별개로

글 내용엔 참 공감함.
피파온라인을 하는것도 아니고 말이지. 뭐만 좀 못하면 바로 달라들어서 바꾸고 바꾸고 바꾸고..

여론도 문제지만 저런 여론에 휘둘리는 축구협회가 더 문제라고. 누가 뭐래든 옳다고 생각하면 쭉 밀어붙이던가 해야지 금방 또 이리저리 휘둘리니...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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