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된 세상속의 15세 소년

세상으로 나오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나의 시계는 어디에서 멈춰버렸다고. 그리고 그런 말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가 멈춘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가 동결되어 버렸다고.
  나를 중심으로 하는, 혹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세계가 이상징후를 보인 것은 중학교 때쯤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녀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거리가 멀어진 그 때부터 나의 세계는 톱니 바퀴가 어그러진 것처럼 돌기 시작했었으니까. 그나마 나를 정신적으로 붙든 것은 수학 경시반이었지만, 중학교 1학년 당시에는 그저 취미생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도 했고. 그리고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 같았고, 언제까지나 밝은 천연색으로 보였던 세상은 그 때 이그러졌다.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날. 중학교 1학년 1학기의 어느날... 날짜마저 확실하게 기억할 정도의 기억력은 없지만, 그 날 있었던 일과, 그 일에 대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배신'. 그 이외의 말이 뭐가 필요하랴. 초등학교 5학년 때.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한적이 있었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고, 매우 소수의 녀석들이었지만, 그것은 전형적인 왕따의 모습을 띄고 있었고, 나도 남들이 받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름대로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모습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그것을 '그녀와 같게 되기 위한 과정'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왕따 기억인 초등학교 5학년의 추억은 묻혀져 갔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의 그것은 달랐다. 안 그래도 정신적인 지주의 부재로 흔들리고 있었던 나에게 그 것은 너무나도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뒷편에서 어떠한 일이 진행되었었는지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예고하지 않았던 그 일이 찾아왔다.
  평화로웠던 여름의 아침.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한 친구에게 돌아온 반응은 외면이었다. 그다지 친한 친구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아침이 넘어갔다. 교실안의, 이상한 공기를 눈치챈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노골적인 그 분위기는 알아채고 싶지 않아도 알아챌 수밖에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고 진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가장 친했다고 생각하던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모른척하지마라." 라고.
  정말 뒷통수를 망치로 후려친 듯한 충격이 온 몸을 휩싸고 지나갔다. 잠시 떠오르는 지난 며칠간의 기억. 그 기억안에서 누락된 점은 하나도 없었고, 마찬가지로 문제가 될 만한 점도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 있어 천연색으로 보이던 당시의 기억은 너무나도 평범한 나날들이었고, 초등학교 때처럼 반짝일만한 추억이나 목표같은 것은 없는, 단지 시간상으로의 하루였을 뿐이니까. 사실 내가 모르던 어떠한 일을 했을 지도 모른다. 작은 일이 나비효과를 통해 확산되듯, 그런 일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인지하고 있어야 할 만한 큰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들은 "모른척하지마라."라는 것은 하나의 칼날이었다.
  이 후, 며칠 동안은 그런 분위기가 유지가 되었고, 점점 풀어지기 시작한 분위기에 나도 녹아들어 갔지만 그 녀석과의 친밀도는 평균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고, 천연색으로 보이던 나의 세계의 구석에 조금씩 얼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 편하게 날아다니던 나비들도 사라진지 오래였고, 중학교 1학년. 당시 그 사건의 충격으로 나의 세계는 조금씩 얼어 붙기 시작했다. 또 한,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나이때의 자의식이 강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내 일. 특히 내 약한 모습에 관해서는 다른 아이들이나 부모들, 선생들에게 알리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고, 게다가 그 일로 인해 다른 아이들에 대한 신뢰가 극한 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내 본 모습은 내 겉 모습안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어두운 모습' 의 대부분은 이 때를 베이스로 한다. 남들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 세계에 관한 불신. 자신에 관해 가지고 있는 강한 자의식. 실제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상황에서 어리고 어렸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을 효과적으로 숨기는 것 뿐이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의식의 강화를 가지고 왔다. 그것은 좋은 일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의식의 과잉' 의외의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것이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의 지금의 모습의 베이스가 되어간 것이다.
  얼어붙기 시작한 마음은, 어떠한 Hiter를 가져다 놓지 않는 한, 그 영향력을 강하게 밖으로 뻗어나가려고 하고, 안타깝게도 내 마음속에 그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계속해서 그 상황을 방관할 것 뿐일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단지, 강한 자의식에서 비롯한 '남들에게 나의 약한 모습을 알리기 싫다' 라는 자존심은 나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가르쳐 주었고, 하기 싫은 일도 웃으면서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그 자존심을 거부할 수 없었던 나는 강하게 이중성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성숙한 의식을 가지지 못했던 당시,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성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들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과 행동으로 친한 척 하고, 뒤에서는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들이라고 무시하는 그런 이중성의 매력에 강하게 혹했고, 그것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년. 수학 경시반이라는 배출구가 생기긴 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친구라기 보다는 '같이 생활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유대감' 이라는 존재로서 나에게 다가왔지만, 학급 친구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그 새로운 감각에 빠져든 나는 강하게 그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나이 학생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세세한 문제점(그것이 요즘엔 '초딩' 이라는 의미로서 비춰지지만)을 그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었고, 나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마약처럼 나를 중독시켰음이 틀림없다.
  수학 경시가 끝남과 동시에, 허울 뿐이던 중학교의 추억도 끝이 났고, 고등학교에 들어왔다. 나름대로 상위권 만을 모아 놓은 학교에 들어왔지만, 나와 같은 길을 달리던 친구들은 조금 더 앞의 길로 먼저 들어섰고, 그것으로 인한 패배감에 젖어있던 나는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 있는 선생님' 을 만났다. 이 일은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 하도록 하고, 처음 느끼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 로 내 마음 속의 얼음도 조금은 풀리는 듯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세계 전체가 얼어 붙어 버리는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마찬가지로 나중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내 기억 속의 최악의 교사로 남아있는 선생들을 만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학생을 돈 벌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 녀석들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후 종종 벌어진 그들과의 트러블은 자연스럽게 나를 나락으로 초대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선생님들은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인간다운' 선생님들 이었고,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학생들과 강한 선을 긋고, 그 이상의 소통(그것은 일반적으로 수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타났다)을 하지 않으려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대해 실망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많았다. 실제로 아직도 고등학교에 꼬박꼬박 찾아가고, 초등학교 선생님과 종종 얼굴을 마주치는 입장에서 함부로 선생이라는 직업을 욕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단지 존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말아서 그 끝부분으로 학생의 얼굴을 찍어버리는 모습은 나에게 절망만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세계가 얼어붙었다.

  믿을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세계는 근본적으로 나에게 불리하게 운동하고 있으며, 남을 믿고 의지하는 순간 내 의지는 꺾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는 계속해서 어둡게 변해가고, 그것을 두려워 한 나는 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동결시켰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밝은 것이 남아있는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안주하고자.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이었으며, 일종의 자기방어기제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어두움 따위에 물드느니, 나는 세계에서 고립된 깨끗한 영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1년 후. 고 3입시를 치르던 어느 날. 나는 뼈 속까지 세계의 어둠에 물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밤새도록 앓았다.
  그 당시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둠 그 자체였다. 기숙사에 틀어박힌 채 바깥과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나에게 드러난 세계의 모습은 학교와 인터넷 뿐. 학교는 자신들의 이익에 미친 선생들과, 자신의 점수를 방어하기 위해 다른 학생을 두려워 하고, 자신이 이익을 위해 친구를 파는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역겨울 정도로 더러운 거래들. 그리고 그런 학교에서 벗어나면 그곳은 익명성으로 무장한 살인범들이 설치는 인터넷 뿐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좋은 점을 발견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나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어쨋든 나를 둘러싼 세계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고,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인상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1년. 지금도 나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세계에 대해 불신을 가진 비관적인 15세 소년. 그리고 그것을 단단하게 싸고 있는 녹지 않는 얼음(Unmelt Ice). 지금의 모습은 단지 그 위에 뒤덮힌 세상의 어두운 부분과 그 것으로부터 자신을 감싸기 위한 의도적인 인격뿐.
  종종 세상과 벽을 쌓은 사람들이 벽을 뚫고 세상과 소통하게 된 이야기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벽을 쌓았다고 해도 '뚫린 천장'을 통해 세상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을 이야기 한다. 애초에 '완.전.하.게.고.립.된.' 인간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산산히 부서지기 전에는 불가능 하다. 녹지 않는 얼음안에 틀어박힌 장미를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열이 아닌 폭력일 뿐. 그리고 그 폭력이 가해져 얼음이 부서지는 순간, 그 안에 들어있는 자의식의 모습은 너무나도 확연하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얼음에 뒤덮힌 이상,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본연의 자의식을 뒤흔들기 힘들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힘들다고 할 때는, 얼음 안까지 '충격이 가해지는' 강한 타격이 자신을 강타할 때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얼음속에 틀어박힌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by 테사오TCT | 2006/10/28 01:50 | Thinking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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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세린 at 2006/10/28 02:55
다시금.
알아간다는건 기분좋은 일입니다.
Commented by 숀_Shawn at 2006/10/28 06:43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극심한 자기 부정과 강한 에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순적

인 면이 있지요.
Commented by 나나야 at 2006/10/28 22:24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에 우연히 블로그에들어왔다가,
개장하셨다는 뎃글을 보고 자취를 남기고 갑니다.
아마..11월 정도에 다시 이글루에서 활동할것 같습니다.
그럼,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Commented by 니타 at 2006/10/29 21:59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테사오님의 세계는 테사오님만의 것이 아닌겁니다. 남들이 끼어들 여지를 마련해 준거 아니겠나요.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건 자기를 이해해 달라는거겠죠?
Commented by Fedaykin at 2006/10/30 01:25
해변의 카프카라도 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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