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8일
학벌주의, 그 진실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의 제시
학벌주의, 그 진실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의 제시
<<사고와 표현 Ⅱ 소논문>>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산업정보시스템 공학부
2006170510
이 성 호
※ 주제 : 학벌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 그 문제점의 분석과 대안의 제시
Ⅰ. 서론 :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한국사회의 진단
ⅰ. 학연과는 다른 학벌주의
ⅱ. 한국사회가 보이는 학벌주의
Ⅱ. 본론 1 - 학벌주의의 문제점
ⅰ. 학벌과 불평등
1)새로운 계급구조의 형성
2)과거의 계급구조와의 차이점
3)학벌주의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불평등의 사례
ⅱ. 학벌 이기주의와 공동체의 붕괴
1)학벌(학연과는 다른)이 가지는 이기주의
2)학벌주의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
ⅲ. 공교육 파탄
1)도덕, 인성부문에서의 공교육의 한계
ⅳ. 사교육의 범람
1)입시만을 위한 사교육의 증가
2)높아지는 사교육비. 부의 재생산.
Ⅲ. 본론 2 - 대안의 제시
ⅰ. 대학평준화
1)대학평준화를 해야 하는 이유
2)대학평준화를 하면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점
Ⅳ. 결론 : 글을 마치며
Ⅴ. 첨부자료 : 국립대통합네트워크의 개요
Ⅵ. 참고문헌
Ⅰ. 서론 :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한국사회의 진단
한국에서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고등학생들, 혹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학’ 이라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유일한 목표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정도의 중요도를 가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렇게 대학에 집착하는가? 사회는 대졸자들도 취업을 시켜주지 않고, 언론은 그런 대졸자들의 실업문제에 대해서 날마다 보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그것도 서울대학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줄은 끊이질 않는다. 특히나 인서울이 아니라, 서울대학교에 그렇게나 집착하는 것은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서울대학교’ 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여기에서 살펴볼 학벌주의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학벌주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학벌주의와 착각하곤 하는 학연주의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의 사회가 가지는 학벌주의의 문제점을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학벌주의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학벌주의를 이야기 할 때, 서울대학교가 빠질 수는 없다. 아니, 서울대학교 자체가 이미 학벌주의이고, 학벌주의는 곧 서울대를 의미한다. 학연주의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혹은 다녔던 사람끼리의 편의를 봐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학연주의는 전반적인 사회문제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지역적인 사회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학벌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이후에도 계속 설명할 테지만, 굳이 학벌을 한 단어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계급’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학연주의가 나타내는 것처럼,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 주는 관계가 아닌, 단지 ‘학벌’ 만으로도 계급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이 가지는 인성 혹은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 사람이 가지는 졸업장만으로도 그 개인의 사회적인 계급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특히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는 이런 상황이 강하게 나타난다. ‘자기의 권력을 권리로 만들고 민중의 복종을 의무로 만들기 위해’, 사회적 지배층은 이데올로기를 만든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대한민국의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부터가 필요할 것이다. 2002 대선의 경우, 후보와 기타 중요도가 높았던 인물 14인 중의 11명이 서울대생이었고, 이는 약 78.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수였다. 그 밖에도 출신 학교별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현황을 비교해 보면 서울대가 62.3%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비록 대통령으로 서울대 출신이 아닌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를 붙잡고 있는 권력층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이후, 첫 인사인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서 볼 수 있는데, 13명의 수석비서관들 가운데 경희대 출신인 문재인 민정수석을 빼고는 모두가 서울대 출신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역대 어떤 정부에서도 보기 힘든 극단적인 편중 인사였고, 대통령직에 취임도 하기 전에 학벌 없는 사회를 추구하겠다던 자기의 약속을 뒤집고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대통령이 바뀐 것 가지고는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잡고 있는 서울대졸업생들의 권력구조, 즉 학벌주의를 바꾸기는 턱 없이 부족했었다는 말이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자기의 권력을 권리로 만들고 민중의 복종을 의무로 만들기 위해’ 비서울대졸업생 대통령조차 인사에서 서울대졸업생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학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 것이다.
이는 외국에서 볼 수 있는 사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일본의 예만 들더라도, 국회의원의 상위 7대 출신 학벌을 비교해 보아도, 동경대가 20%를 넘지 않는 18.5%를 나타내고 있으며, 10%를 넘는 대학은 동경대와 와세다대 두 대학뿐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어서, 2003년에 98명인 상원의원 가운데 하버드 대학 출신은 4명이며 예일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 출신이 각각 3명씩으로 어떤 대학이든 5%이상의 점유율을 보이지 않는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서울대 학벌의 의미는 독점적인 최고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학벌주의는 어떠한 문제점을 낳고 있는 것일까?
Ⅱ. 본론 1 - 학벌주의의 문제점
ⅰ. 학벌과 불평등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하나의 ‘계급’ 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졸/고졸 로 나뉠 수도 있고, 대학 내의 서열로 나뉠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크고, 강하게 나타나는 계급은 바로 ‘서울대’ 이다. ‘서울대는 한국의 지배계급이다. 한마디로 말해 서울대는 권력이다.’
특히나 그것은 사회의 상층부로 갈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특히나 김상봉씨가 자신의 책인 『학벌사회』에서 표현했듯이, ‘서울대와 연고대등 차상위권 대학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면 서울대와 보통의 다른 대학의 차이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학벌로 인한 ‘계급’ 은 너무나도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나 ‘부익부 빈익빈’ 이라는 표현이 잘 설명하듯이, 잘 다져진 학벌은 ‘자본’ 이라는 형태로 학벌을 가진 자에게 되돌아오게 되고, 이후에도 설명하겠지만 ‘자본’을 가진 학벌주의적 귀족계급은 또 다시 자식에게 잘 다져진 학벌을 선물하게 된다. 이는 교육이 필요로 하는 ‘고액의 교육비’를 부담할 수 있는 계급은 학벌을 지니고 있는 학벌주의적 귀족 계급이라는 점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학벌주의가 의미하는 것이 현대판 계급주의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중세시대 때 나타나던 계급과는 과연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계급제도가 의미하는 것처럼 ‘고위계급’으로 갈수록 권력을 가진다는 기본적인 시스템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학벌주의를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차이점은 금방 보이게 된다. 일단 학벌은 세습되지 않는다. 비록 ‘부익부 빈익빈’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에 의한 학벌의 세습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것은 혈통처럼 ‘완벽하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학벌로 인한 계급은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다.’ 위에서도 나왔지만, 서울대 중심의 권력이 형상화 되어 있다고 해서 다른 학벌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차이점일 뿐이고, 실제로 상황에 접목시켜 보면 다르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학벌주의로 인해 파생되는 불평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역대 장․차관 직에서의 서울대가 가지는 압도적인 권력을 비교해 본 자료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공무원들의 경우는 어떨까? 1~4급 공무원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학벌을 조사해 본 결과,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18.0%이다. 상당히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장․차관직에서 서울대가 62.8%의 압도적인 비율을 보인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이다. 특히나 두 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SKY가 아니라 방송대라는 것은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대는 5.5%의 고려대와 5.2%의 연세대를 제치고 12.6%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결과는 1~3급 공무원의 학벌 비율을 확인해 보면 곧 이해가 간다. 이 자료에서 서울대는 30.5%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7.5%의 고려대와 7.4%의 육사가 잇고 있다. 이처럼 상위직 으로 올라갈수록 서울대의 점유율이 증가한다. 같은 시기에 조사된 1급 공무원의 학벌 현황을 보면 총원 255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123명으로 무려 48.2%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결과, 서울대의 권력독점이 고위직 또는 권력핵심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강화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서울대의 권력 독점은 비단 정부(공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민간부문에서 가지는 서울대의 권력 독점은 정부에서 일어나는 그것보다 오히려 더 강하게 일어난다. 최근 4년 매출 100대 기업 대표이사의 학벌을 보면, 서울대 출신이 43.7%로, 뒤를 잇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13.4%보다 압도적인 숫자임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사대상 연도를 통틀어 공기업 사장과 이사장의 연인원 총계가 135명인데 그 가운데 서울대 출신의 총계는 83명으로 무려 61.5%에 달한다. 그에 반해 2위인 고려대는 모두 11명으로 8.1%에 불과하고, 8명의 동국대와 7명의 연세대를 제외하면 두 명이나 한 명을 배출한 대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자본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최고의 지배학벌이며, 나머지 학벌들은 그 권력과 자본에서 소외되는 불평등한 관계가 조직된다. 그리고 서울대 학벌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사회적 자본을 지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문화와 정신의 영역에까지 서울대 학벌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대중의 의식을 보이지 않게 통제하는 언론의 경우에도 서울대는 확고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어서 그들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대 신화와 일류대 신화를 노골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1999년에 중앙 방송 및 신문사 간부 466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172명으로 37%이며 고려대는 18%, 연세대는 10%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언론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수 사회에서 서울대는 가장 많은 수의 교수를 배출했고, 지금도 배출하고 있는 대학이다. 전체 대학 교수 46,909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12,756명으로 27.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3,985명의 연세대나 2,782명의 고려대를 훨씬 웃도는 영향력이고, 전체 대학 교수들 4명 가운데 1명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1992년의 31.1%보다는 조금 줄긴 하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한국사회에서 서울대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성급한 판단이다. 비록 비율은 줄었을지 몰라도, 10년 동안 총 교수 수가 153.7%나 증가했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는 서울대의 점유율이 약간 줄어든 것이 서울대의 세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교수들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굳이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겠지만 서울대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더 선호되고 영향력이 큰 대학에 더 많이 재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울대 학벌은 권력과 자본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학교수직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적 삶의 영역에까지 그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집필한 교과서를 보고, 서울대 출신 평론가와 문학담당 기자가 권하는 책을 읽으며 자라게 된다. 이처럼 서울대는 본래적 의미에서 학문공동체인 대학이 아니라, 유무형의 권력과 사회적 자본을 독과점하는 한국 최고의 권력집단의 재생산장치이다.
계속해서 살펴보았지만, 한국사회에서 학벌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서울대의 권력독점 문제이다. 그리고 학벌은 모든 종류의 권력을 불평등하게 배치하는 기제인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결정하는 배치기제이기도 한 것이다.
ⅱ. 학벌 이기주의와 공동체의 붕괴
지금까지 학벌이 유발하는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서울대 쪽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다뤘다면, 지금부터는 학벌로 인해 공동체가 붕괴되거나,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는 사례들을 통해 학벌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학벌은 한 단위로서의 공동체를 만든다. 즉, 예를 들어, 동문회의 경우에, 그 안에서 한 개인은 다른 개인에 대해(같은 학벌구성원들에 대해) 맹목적인 친밀감을 느낀다. 그것은 일종의 ‘가족주의적 관계’로 재구성될 수 있으며, 학벌귀속의식이 강할수록 더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이 자체의 친밀감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친밀감이 맹목적이 될 경우에, 그리고 공공적 영역에서 개인의 판단력과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되면, 그것은 한 사회의 문제점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가족주의적 관계’에서 같은 학벌이 아닌 경우에는,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남’ 이라는 감정과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 이 경우에 가족의 경우에는 어떠한 잘못을 해도 덮어주고, 위해주어야 한다는 가족주의적 관점이 접합되면서, 자신의 동문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어떠한 잘못을 해도 ‘동문’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죄를 덮어주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듯 학벌의식이 낳는 친밀감과 거리감은 상당히 맹목적인 모습을 띄게 되는데, 이러한 맹목적 친밀감과 거리감이 자립적 주체의 형성도, 참된 인륜적 공동체의 형성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처음부터 남 같은 학벌이 없어서 학벌의식에 사로잡힐 일도 없었던 시인 박노해는 그렇게 학벌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사람들을 보며 학벌 없는 사람이 느낄 수 밖에 없는 절망감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서울대 연고대 명문대 출신끼리는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인맥을 타고 ‘우리가 남이가’ 끌어주고 키워준다면서요.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들끼리는 ‘더불어 함께’ 잘들 살아갑니다. ‘나눔과 섬김’을 잘도 실천합니다. ...........(중략)............ 계급 차별에 한이 맺힌 나는 30년밖에 못간 군사독재보다 눈에 드러나는 계급 차별이나 분단구조보다 더 끈질기고 공고한 게 이 숨은 신분제만 같습니다. ............(중략).............. 아 사랑도 이념도 시대조차 초월하는 이 ‘숨은 구별 짓기’가 나는 끔찍합니다.”
법조계의 경우는 서울대를 비롯해서 같은 학벌들의 무리 짓기가 강하게 나타나는 분야 중 하나이다. 특히나 법조계의 경우에는 맹목적 친밀감이 공공적인 정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학벌주의는 상당히 위험한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송사에 휘말리게 되면 능력 있는 변호사를 찾기보다는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와 학연이 닿는 변호사를 먼저 찾게 된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출신 학교가 어디냐’는 것은 수임 건수 즉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급박한 처지에 처한 의뢰인들이 ‘큰돈’을 들여 변호인을 수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담당 재판부와 변호사의 학연이기 때문....(중략)....예를 들어 명문 A대 출신 부장판사가 담당하는 재판에 들어가 보면, 원피고 측 변호사들의 7~80%이상이 A대 출신 이라는 것. 범위를 좀 더 넓혀서 담당 재판부의 좌배석, 우배석 판사의 출신 대학이나 이들의 출신 고교, 지역까지 전부 ‘분석’해보면 그 가운데 한 부분이라도 걸리지 않는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재판정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이들은 얘기한다. 실체적 진실을 공정하게 가리기 위한 법정공방이 능력이 아니 학연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검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종 대형 비리사범부터 단순 절도범까지, 일단 구속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임검사-담당 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으로 이어지는 수사라인과 학연, 지연으로 얽힌 변호사 찾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이런 법조계에서의 학벌주의는 한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법원은 10일 수도권 모 지법에 근무하던 P모 판사가 지난 1월 가짜 외제 의류를 만들어 판 혐의로 구속된 서모 피고인의 보석 신청을 두 차례 기각했다가 자신의 고교 동창 변호사가 다시 보석 신청을 하자 허가, 물의를 빚은 책임을 물어 다른 법원으로 전보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워야할 법조계조차 학벌연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다른 분야에서라면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일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청와대 수석 비서들 거의 전부, 행정부의 국무위원의 반 이상, 국회의원의 1/3이상이 선/후배 혹은 동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느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선후배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줄 것이고, 운이 나쁘게 송사에 휘말린다고 하더라도 판, 검사, 변호사의 반 이상이 동문일 것이며,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어김없이 자신이 동문이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ⅲ. 공교육 파탄
이렇듯 학벌주의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폐단이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에 동조해서 권력을 잡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그런 욕망은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으로 목표 화 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목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학벌주의에 한 몫 하는 것’으로 변질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참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공립학교들이 입시학원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이 현대에 와서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멀리서 보자면 이 땅에서 교육의 파행은 수백년 전 과거제도를 통해 교육이 권력획득을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며’, 가까이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학벌과 대학서열이 고착화되면서 심화된 것이다.
학교, 정확히는 공교육이 입시학원으로 변질되면서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은 심각했다. 아직 미성숙한 미성년자(未成年者)들에게 사회에서 필요한 도덕, 인성부분의 가르침을 주어야 할 학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때, 학교는 자신들의 ‘입시학원’ 으로서의 명성이 떨어질까 두려워 쉬쉬하고, 가해자는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지만, 피해자는 도망치듯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하는 세상이 지금의 학교다. 이래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도덕과 인성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만들어져 오는 도덕마저 빼앗고, 그저 입시만을 준비하는 입시위주의 기계를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학생들은 입시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목표로 하는 기계처럼 키워지게 된다. 한국의 모든 학교에서 지향하는 궁극적인 ‘선’ 은 바로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학교는 ‘공부를 잘하기’를 강요한다. 그 안에 도덕적 교육, 혹은 인성적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 단지 학교는 궁극적 목표인 ‘서울대 입학’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그 안에서 그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은 쓰레기로 취급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은 사치이다. 누구도 왜 공부하는가 묻지 않고 공부한다. 일주일에 과외를 많게는 열 가지씩이나 받는 초등학생은 그 많은 과외를 자기가 받아야 하는 까닭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과외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삶은 강요된 타율성에 의해 지배된다.’ 이렇게 짜여진 일상 속에서 학생들은 인성이나 도덕, 혹은 자율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단지 ‘입시’ 만을 생각하는 기계로서 길러진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그 가치는 참된 도덕과는 정말로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서울대 학생이 되는 것과 참된 가치는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서울대 학생은 지방대 학생보다 착하고, 머리가 좋으며, 능력이 좋고, 외모도 뛰어난가? 물론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지만 사회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착하고, 도덕적으로 묘사하며,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못나고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한다. 이것은 일종의 학생들에 대한 세뇌교육이며,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서울대를 중심으로 하는 학벌귀족사회)를 지켜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면 잘 할수록 타인에 대한 경쟁심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상위권으로 갈수록 경쟁자의 수가 적어지기 때문에 누가 경쟁자인지가 명확해지고 대립관계 역시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성적이 하위권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경쟁자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져 경쟁관계가 모호해지고 그에 따라 경쟁심리 역시 명확히 의식되기보다는 막연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상위권 학생들은 경쟁자의 상황을 언제나 예민하게 주시하고 경쟁상대의 성적이 오르고 내림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되는데, 그 결과 상위권 학생들은 언제나 경쟁자의 실패를 바라는 부도덕한 심리상태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 하게 된다.’ 이는 사회의 권력자들이 말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착하고 도덕적이라는 주장과는 정 반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채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는 것에 비례해서 그 아이가 경쟁자에 대한 경쟁심이 강해지고, 그 결과 경쟁자에 대한 부도덕한 소망을 무의식중에 품고 사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ⅳ. 사교육의 범람
이런 식으로 공교육이 무너져 가는 것을 학부모들이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앞장서서 공교육을 망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이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음에 틀림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학교가 아니라, 자기 자식들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냐 없냐, 혹은 상대적으로 좋은 학벌을 얻냐 얻지 못하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망가져 버린 공교육을 그들은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교육이 팽배하게 되는 것이다.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면서도 사교육을 시킨다. 그럴 정도의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돈이 없다고 할지라도, 학벌이 자본을 부르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통해서, 결국 좋은 학벌을 얻는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못 먹으면서 라도 자신의 자식은 공부를 시키려고 비싼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역시 공교육보다 더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공교육은 정부에서 주관하는 ‘교육기관’ 이다. 아무리 학교가 입시학원으로 전락하고,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고 해도, ‘학교’ 라는 울타리 안이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느 정도 보호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교육의 시장으로 나오면 말은 달라진다. 그것은 진정한 ‘입시학원’ 이고, 학생은 단지 돈벌이의 수단, 혹은 자신의 학원의 명성을 올리기 위한 수단에 지니지 않는다. 학원은 학생에게 입시 수단을 가르치고, 학생은 좋은 학벌에 진학하여 학원의 명성을 올린다. 그리고 그 명성을 보고 또 다른 학부모가 찾아온다. 사교육의 끊이지 않을, 그리고 무서우리만큼 지독한 순환고리인 것이다. 그런 시스템 안에서 학생에 대한 인성 혹은 도덕 교육은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다. 그곳은 ‘학교’ 가 아니라, ‘기술 배움터’ 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사교육의 문제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지적하듯이 사교육의 특징 중의 하나는 높은 비용이다. 그리고 흔히 ‘쪽집게 강사’ 라고 불리 우는 사람들은 등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천문학적인 비용을 제시한다. 거의 그렇듯이, 그 시장에서 오래도록 있던 사람은 그 시장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시장은 ‘수능’ 이고, 수능은 대학입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기준이다. 여기서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학벌 혹은 여러 가지 방법들로 인해 자본을 축적한 사람의 경우는, 학벌이 곧 자본이고, 사회적 지위이며, 계급인 것을 이미 학습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식에게 그 ‘계급’ 을 세속시키기 위해서는 자식이 좋은 학벌을 얻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축적한 ‘자본’을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교육(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교육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교육 안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교육이라고 해두자)을 받은 사람이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다. 강남권의 학교의 서울대 진학률을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는데, 자본을 축적한 계급이 사는 강남권의 학교에서는 사교육 시장도 엄청나게 발전해 있다. 그것을 통해서 자본을 통해 새로운 학벌이 생성이 되고, 또다시 그것은 위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자본을 축적하지 못한 일반 서민들의 경우는, 피 터지게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혹은 운이 좋지 않는 한 좋은 학벌을 손에 얻기에는 무리인 경우가 많다. 결국 좋은 학벌을 얻지 못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낙오자가 되고, 자연스럽게 그것은 자식을 낳아도 사교육비를 지원해 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학벌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완성되고, 완성되고 난 다음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확고화 시키는 순환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벌주의가 존재하는 한, 사교육은 없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교육을 불평할 줄은 알아도 사교육의 원인이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인 줄은 모른다. 또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김영화는 현재와 같은 입시경쟁 아래서 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어떤 점에서 공교육이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서술한 뒤에, 결론적으로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석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학교의 제도화 수준을 낮추어 대폭적으로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학교가 학습자의 요구를 비롯한 교육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교에서도 교사의 수업평가제, 수업의 질을 반영할 수 있는 승진제도 등 수업에 대한 책무성을 묻는 장치를 도입하여 ‘학원에서처럼’ 수업의 질을 ‘경제적’보상과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육과 행정업무를 분리시켜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수업 소홀로 대한 핑곗거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학원에서처럼 “교과별로 수준별 수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학원에서처럼 “학교에서도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우대받는 학교문화와 인사제도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학교는 공교육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대학입학선발은 공교육에서 충실하게 성취한 부분을 측정하여 공교육에서 학습한 내용과 대학선발장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김영화, 같은 글, 104쪽)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여섯 가지 처방 가운데 마지막 처방을 제외한 앞의 다섯 가지 처방은 학교가 학원의 장점을 배우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학교가 학원을 모방해야 한다면, 끝내 학교는 학원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화의 처방은 학원에 대한 학교의 항복선언에 다름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편으로는 “학교교육이 입시교육을 충실히 한다면 그것은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과제와 모순이 될 것이므로 학교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같은 글, 104쪽),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학교가 학원을 모방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런 자기모순은 대학서열과 학벌체제 그 자체를 타파하기 전에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명백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학벌 타파를 주장하기에는 이 땅의 대다수 교육학자들의 학벌이 너무 좋은지도 모른다.’
Ⅲ. 본론 2 - 대안의 제시
ⅰ. 대학평준화
학벌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의 차이. 프랑스와 독일의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의 경우 대한민국처럼 대학의 서열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파리 제 1대학, 파리 제 2대학. 이라는 식으로 지역에 따라 나눠져 있고, 특별한 대학의 이름조차 없다. 이 대학들은 모두 평준화된 대학들이며, 어디서든지 수준 높고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의 대학생들의 대부분의 관심은 취업이나 권력 혹은 자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학벌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일 것이다.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간의 서열이나 장벽이 나눠져 있지 않고, 독일 사회에서 어떤 대학이 좋거나 더 나쁘다는 말은 대단히 모순되고 불합리한 발언이다. 대학은 본디 학문적 성과를 내기위한 곳이므로, 만일 대학이 평가가 된다면 연구 성과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 성과의 주체는 한 개인이므로 한 대학 전체를 통틀어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만일 학벌주의를 없애고자 한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나은 대안, 그리고 현실성 있는 대안은 대학 평준화이다. 물론 현재의 입시 및 경쟁이 중요시 되는 상황에서 이것을 현실화 시키기에는 꽤나 많은 어려움과 진통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고 해서 학벌주의가 판치는 지금의 사회를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에는 고름이 되어 더욱 사회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학 평준화를 위해서는 어떤 것을 해야 할까?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은 고립되어 있다. 비록 계절학기 등을 통해서 타 대학에서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매우 독립적이고 소규모의 개방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벌주의가 형성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끼리의 문호개방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연구 성과를 주고받는 것 뿐 만의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쪽, 저쪽에서 강의를 듣고, 하나의 통합된 캠퍼스로 운영될 수 있을 정도의 문호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동화 된 대학 캠퍼스화가 진행이 되고, 각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질이 비슷해진다면 점점 대학의 서열화 및 학벌주의도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대 졸업생이 가지는 ‘권력의 세습’ 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어떠한 견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실제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고, 지금까지는 마땅한 견제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권력독점의 제도적 제한을 걸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별로 인구수대로 고시 합격생을 정해 놓는 다면, 굳이 ‘수재’들이 우글거리는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다. 특히나 그것이 대학별로 인원수가 나눠진다면 서울대에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이것이 선행되면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그 전에 충분한 대학 간의 교류 및 문호개방을 통해서 질적인 평형을 맞추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 정부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학벌주의를 잠재울 만한 성공적인 대학평준화를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
대학평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국립대통합네트워크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 대학평준화를 기반으로 국립대끼리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더 나은 학생 관리와, 각 캠퍼스간의 선의의 경쟁으로 대학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관한 내용은 첨부문서로 별첨하도록 하겠다.
Ⅳ. 결론 : 글을 마치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학벌주의에 관해 잘 모르거나, 알아도 관심을 안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학벌주의는 분명히 대한민국 사회를 갉아먹는 존재이고,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회적 인식이 경쟁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고, 부익부 빈익빈 적인 사회 구조를 당연시 여기며, 자신은 부자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학벌주의는 사회적 문제이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물론 학벌주의가 개인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받아왔던 일종의 세뇌교육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Ⅴ. 첨부자료 : 국립대통합네트워크의 개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 대학서열체제 해소를 위한 정책대안
정 진상(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대학서열체제는 교육모순의 엔진이다.
우리나라 교육모순이 대학입시를 통해 표현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도 교육혁신위원회를 통해 2008년부터 시행할 대학입시제도 개혁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번 대학입시 개혁도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한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대학입시의 본질은 무한경쟁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동하는 엔진은 고착화된 대학서열체제이다. 모든 대학이 강고한 서열체제 속에 있는 한 모든 학생들은 한 단계라도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려 하기 때문에 무한경쟁을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 입시개혁은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채 경쟁의 방법만 바꾸려 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대학서열체제는 대학입시를 매개로 한국교육의 총체적 모순을 낳고 있는 주범이다. 단 한번의 대학입시로 인생의 등급이 매겨지기 때문에 중등학교는 오직 입시위주 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일단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입학할 때의 서열에 따른 졸업장을 보장받기 때문에 학과공부 대신에 각종 고시나 취직 시험에 매달린다. 이로 인해 초중등 교육이 황폐화되고 대학은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모순은 교육문제로 그치지 않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동원한 점수따기 경쟁은 계급재생산의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서민들의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명문 대학의 동문패거리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대학서열로 인한 학벌주의는 국민들의 가슴 속에 빗나간 우월감과 절망적인 열등감을 재생산하고 있다.
대학서열체제에는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연고대, 수도권 소재 대학, 지방 국립대학, 지방 사립대학, 전문대학의 순으로 형성되어 있는 ‘대학간판 서열’이다. 다른 하나는 전문직 일자리가 보장되는 학과, 예컨대 자연계열의 의대, 한의대, 약대 등과, 인문사회계열의 법대, 경영대, 사범대를 중심으로 하는 학과 서열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서열체제는 수십년간에 걸쳐 고착화되어 있다. 이 같은 고착화된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교육개혁도 어떠한 입시개혁도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좌초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서열체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물론 대학이 여럿 있으면 서열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대학이 다양화되고 특성화되어 어떤 대학은 철학과가, 어떤 대학은 물리학과가, 또 어떤 대학은 기계공학과가 최고인 대학이 되는 것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대학서열체제는 전혀 자연스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수험생이 수능점수에 따라 대학의 간판을 먼저 선택하고 다음에 학과를 선택하는 행태를 보는 것으로 족하다.
대학서열체제 해소의 방향
대학서열체제가 교육모순의 핵심이라는 문제의식이 확대되면서 이를 해소하려는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되어 왔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균형발전과 지방대학 육성이 주요의제가 되면서 대학서열체제 해소 논의가 수면위로 떠올라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크게 두가지 상반되는 방향의 논의가 대립하고 있다. 그 하나는 대학입시를 매개로 한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주의를 비판하고 대학간의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대학서열을 조장하는 주범은 국립대에 주는 특혜와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대학수능시험을 폐지하고 국립대학에 집중되고 있는 국가의 지원을 사립대학에도 골고루 배분함으로써 대학간 공정한 경쟁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 일본의 국립대학 독립법인화안에 크게 고무되고 있고, 정부의 정책방향도 일정부분 이러한 시장주의를 지향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시장의 논리가 교육의 논리까지 지배했을 경우 파생되는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시장 원리에 따라 국공립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입장의 결정적인 약점은 십수년 동안에 걸쳐 고착화된 현재의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국립대학 평준화’로 급속하게 수렴되고 있다. 최근에 교육운동의 일각에서 현재의 총체적 교육모순은 부분적이고 기술적인 대응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전면적 공교육체제 개편 논의가 시작되었다. 2003년 봄부터 전교조와 문화연대, 학벌없는 사회 등에서 ‘공교육체제 개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움직임은 2003년 10월 11일 ‘범국민교육연대’의 출범으로 본격화되었다. 이후 범국민교육연대는 ‘대학서열철폐, 대학공공성 쟁취를 위한 전국대학토론회’(2003.9), ‘전면 교육개방 저지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2003.10), ‘사교육비 종합대책안과 대학입시개혁안 공청회’(2003.12), ‘평준화 학술대회’(2003.12),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2004.4)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입장은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지방대 육성 및 국토의 균형발전, 학벌에 의한 사회갈등의 해소 등 교육모순에서 파생한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면 유력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란?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수렴된 구체적인 개혁방안이 바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이다. 이 방안은 2003년 12월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발표된 이후 여기에 대한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되어 민주노동당은 이 방안을 골자로 한 교육공약을 발표했으며, 범국민교육연대에서도 이 방안을 공교육개편안의 골격으로 삼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상당히 구체화되어 있는 이 방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대학간판 서열을 폐지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포함하여 전국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하고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을 이 단일 네트워크에 편입한다. 각 지역의 국립대학들은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학구별로 통합하고 각각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한다.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에서는 대학입학정원을 전체 국립대학정원(현재 약 7만3천명, 비교적 건실한 사립대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되어 준국립이 되는 경우 약 20만명 예상)으로 하여 계열별(인문사회계와 자연계)로 선발한다(중도 탈락을 고려하여 입학정원은 졸업정원의 120-200%로 한다). 다만 서울대는 자체 학부생을 두지 않고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에 속한 모든 학생들이 지원에 의해 학부 강의를 수강할 수 있게 한다. 입학자격은 총정원 중 70%는 고교 내신성적으로, 나머지 30%는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부여한다. 대학입학자격을 취득한 학생은 선지원 후추첨의 방식으로 각 대학캠퍼스에 배정된다. 학부 과정을 이수한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국립대학 학사학위’를 수여한다.
2) 학문간 서열을 폐지하고 기초학문을 육성하기 위해 학부와 대학원의 학과체제를 개편한다. 학부에서는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학문과 교육을 편성하고 전문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인기학과(법대, 사범대, 경영대, 의대, 약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 등)를 폐지한다. 이들 학과는 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한다. 이렇게 되면 전문대학원 입학 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이를 완화하고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각 학구(광역 시도 단위로 전국을 15-20개의 학구로 나눈다)별로 인구비례에 따라 졸업정원을 배정하되 현재의 전문직 배출인원의 2-3배로 늘일 필요가 있다.
3)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는 단계적으로 등록금을 인하하여 무상교육으로 전환한다. 대학의 공교육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원칙에 따라 사립대학을 국립대로 전환하거나 편입을 유도한다. 사립대학의 국립으로의 전환이나 편입은 강제적인 조치가 아니라 국립대학 네트워크에 대한 국가의 대폭적인 재정적, 제도적 지원으로 가능할 것이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에게 운영의 자율권을 주는 대신에 신입생 선발에서 국립대학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조건으로 국고 지원을 하고 전문대학원의 정원 배정에 참여시키면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을 편입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개혁안이 실현되면 1) 입시경쟁은 무한 입시경쟁에서 자격시험의 당락 주변에 있는 학생들로 경쟁이 제한될 것이므로 입시위주의 교육이 지양됨으로써 중등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다. 2) 서열에 의한 대학평가가 교육 내용과 질에 의한 평가로 대체될 것이므로 대학교육이 정상화되어 대학교육경쟁력이 현저히 강화될 것이다. 3) 대학졸업장 자체가 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의 하나인 학벌주의가 타파되고 능력에 의해 평가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4)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의 핵심 축이 지방에 소재하는 거점 국립대학들이 될 것이므로 교육인구로 인한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해소되고 지역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5) 모든 수험생들을 일렬로 세우는 무한입시경쟁이 자격시험 당락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에 경쟁이 현저히 줄어들어 사교육의 필요성이 극히 제한될 것이다. 6) 노동시장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는 대학교육이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본연의 기능으로 정상화될 것이다. 7)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실현가능한가?
이 개혁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최종적인 기구는 공교육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가(정부)이다. 이 개혁안은 부분적인 개혁안이 아니라 전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술공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에 의한 혁명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의 국가는 충돌하는 여러 사회세력들의 힘관계 속에 있다. 따라서 개혁안의 실천을 위해서는 현재의 사회세력들의 힘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개혁안을 실행할 수 있는 주체세력을 형성시켜야 한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 공동화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 대학서열체제로 연구와 강의 의욕을 잃고 있는 대부분의 지방 국립대학의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압도적인 국민들은 우리의 개혁안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서열체제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의 사회적 저항이 예상된다. 여기에는 서울대 교수와 동문들, 사립대학의 이사장들, 학원관계자 등 입시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저항이 포함된다.
이러한 저항을 극복하고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범국민적 교육개혁운동이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개혁운동의 주체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는 교육에 관련되는 대중조직과 시민운동 단체들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연대기구와 교육개혁을 주요 의제로 삼아 활동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교육운동의 중요한 주체이며 가장 큰 대중조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전교조는 파시즘적 교육통제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대항하여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교사들은 대학서열체제가 강요하는 입시위주 교육이 중등교육 개혁에서 최대의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대학개혁 요구로까지 나서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전교조 운동의 수세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개혁을 위해서도 교사들은 이제 대학제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교육체제에 대한 전면적이고 공세적인 운동으로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대학생들은 대학개혁운동을 학생운동의 주요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 부실대학에서 학생들은 재단 비리에 대한 투쟁을 벌여왔으며, 거의 모든 대학에서 학생들은 매년 학기초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을 조직해 왔다. 이러한 투쟁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대학체제 속에서 나타나는 모순에 대한 수세적 투쟁의 성격을 띤 것이다. 학생들은 이제 자신에 속한 대학 내에서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수세적 투쟁에서 벗어나 ‘대학교육의 공교육화’라는 원칙 하에서 전면적인 대학개혁운동을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 운동은 그 중요한 매개고리가 될 수 있으며, 특히 지방 국립대학 학생들이 연대하여 선두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학 교육의 주체인 교수들이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특히 지방 국립대학 교수들은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의 중요한 수혜자인 만큼 이 개혁안의 실현에 주체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교수노조는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을 중요 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가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학부모는 과중한 공교육비(약 50%)와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음에서 불구하고 입시제도 등 교육정책에서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시민운동 단체로서의 학부모 운동은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개별화되어 있는 학부모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기 쉬워 즉자적인 대응의 수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노동조합, 농민회 등 대중조직을 기초로 재조직될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 농민회 등 대중조직이 교육문제를 주요 의제로 내걸고 교육개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의 개혁안이 궁극적으로 국가정책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만큼, 연대기구의 활동을 총화하고 이를 다시 대중 속으로 침투시킬 수 있는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정치지형으로 볼 때 우리의 개혁안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가진 가장 유력한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 정책정당과 사회운동정당을 표방하고 수권정당으로서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범국민교육연대’의 활동을 토대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를 포함한 총체적 교육개혁안을 당의 정책으로 채택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담론이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바꾸어 교육의 공공성 강화 담론을 형성시키고 확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지역균형발전과 대학경쟁력강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의지만 있다면 이 개혁안의 실행에 당장이라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집권 1년 동안 노무현 정부는 권력기반이 취약하고 그 반대세력이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로 옮기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17대 총선을 통해 여당이 다수당이 된 지금에는 정치적 기반이 훨씬 강화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적 결단을 내려 이 개혁안을 실행에 옮기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치적 지형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시장을 통한 해결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전환하지 않는 한 이 개혁방안이 실행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정책에서도 김영삼 정부 이래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 위에서 정책을 실행해 왔다. ‘WTO 교육개방양허안’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며,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실행중인 ‘지방대 혁신역량강화 방안’ 또한 기본적으로 시장논리에 경도되어 있다. 게다가 교육개혁 과제는 경제살리기, 일자리 창출,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의 의제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개혁’이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는 한, 오른쪽의 한나라당과 왼쪽의 민주노동당의 비판에 직면하여 상처받기 쉽다. 정치개혁이나 언론개혁은 다수 국민의 지지 속에 민주노동당의 지원을 받아 일정 수준 가능하겠지만, 경제살리기와 일자리창출 및 복지개혁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큰 의제이기 때문에 좌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이 현저히 약화될 것이고 정권 재창출이 힘들어질 것이다. 이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돌파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다. 우리의 개혁안을 포함하는 교육개혁이야말로 전국민적으로 첨예한 관심사이며 사회전반에 걸쳐 파장이 클 것이므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정권 재창출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운동진영과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기대를 가지고 국민대중을 설득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에 다각도로 교육개혁의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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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6/12/18 04:50 | Thinking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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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으면 주석이 다 빠져서 헷갈린단 말이지. 거참.
솔직히 이렇게 큰 주제를 무슨 수로 썼대니...
정작 쓰고 싶었던 말은 하나도 못쓴듯-_-[짜증]
그.. 국립대 통합은 상당히 좋은 의견인듯 합니다
국립대가 통합되고 각 지방별로 특색있게 특정 분야를 지원하면
정말 괜찮은 성과를 올릴듯 싶네요
문제는 정말 현실가능성..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