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 권력의 독점과 사회적 불평등

LEFT 방중 세미나 첫 번째

학벌사회 : 권력의 독점과 사회적 불평등
12월 29일 금요일, 라마지아.

이번 세미나는 학벌주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학벌이 가지는 의미와 학벌주의라는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이후에 이야기 할 학벌주의에 관한 전반적인 개념을 잡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학생들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
학벌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학벌사회에서 제일 처음에 다루고 있는 ‘어떤 죽음’이라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아파트 배수관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일을 예로 들면서 저자는 학벌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요, 이 학생이 자살한 이유는 가정불화도, 친구 사이의 따돌림도 아닌 공부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이로 치자면 13살가량의 이 학생의 하루 평균 공부시간은 무려 13시간 이상.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한국 남성의 노동시간(이 학생의 일기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하루 평균 10시간을 일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을 크게 웃도는 학생의 공부량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이에 덧붙여, 이제는 사회적 파장도 뭣도 아닌, 그저 종종 일어날 뿐인 일로 치부되고 있는 청소년 자살에 대해서도 한 번쯤 시선을 돌려봐야 할 것입니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으레 신문에는 자살한 수험생의 기사가 뜨곤 하는데, 몇 년 전만하더라도 1면에 실리던 기사는 점점 뒤쪽으로 밀리면서,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게 조그만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그 죽음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어버린 수험생 자살. 심지어는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K대에 들어갔다고 자신의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을 하는 학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명문으로 불리는 K대에 들어간 학생이 과연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까지 한 것일까요?
그 밖에도 언니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여고생, 수능 시험을 앞두고 저조한 학교성적을 비관해 살충제를 먹고 자살한 여고생,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상위권에서 중위권으로 떨어졌다고 자살 한 남학생 등등. 열거를 하자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이유로 자살을 합니다. 2000년 10세에서 24세 사이 청소년 사망자들 가운데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856명(19%)으로 사망원인 중의 2위라고 합니다. 이 중에는 다른 이유들로 자살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학업 그리고 성적이 그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성적’ 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이 목숨을 버리게 하는 것일까요? 성적에 의한 차별? 불평등? 물론 그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명문 사립대에 입학하고서도 자살을 한 학생의 죽음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서울대 입학’을 꿈꾸며 초․중․고등학교 12년을 공부로 보냅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특히 서울대에 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자살을 결심하고, 시도하고, 죽음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학생들에게 서울대가 어떤 의미를 가지기에 학생들이 이렇게나 서울대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라고. 무한경쟁 사회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대접 받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도태된다고 말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 말이 옳다고 가정했을 때, 굳이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능력만 있으면 이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열거한 많은 학생들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고, 그 학생들은 성급한 오판으로 무의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면?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영화 여고괴담 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라면장사를 하더라도 서울대를 나온 사람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단순히 웃어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 서울대 = 권력?
많은 학생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기를 원하면서도 그 이유는 확실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생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 대학의 서열이 높기 때문이죠. 특히나 서울대는 당당하게도 국내 대학 서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서울대 입학을 원하는 것이죠.
재미있는 점은 ‘대학’ 이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변한 것입니다.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기 위한 공간이고 굳이 대학의 서열을 매겨야 한다면 그것은 그 대학이 이뤄낸 학문적 성과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물론 대학의 서열화 자체가 넌센스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일 한 대학의 학문적 성과가 타 대학의 그것보다 월등하게 높다. 라고 한다면 그 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학문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물론 이 경우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통하지 않는 이론입니다만) 하지만 소위 스카이라고 불리는 3개 대학 가운데 서울대가 가지는 학문적 성과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과대끼리 비교했을 경우에 고려대가 가지는 학문적 비율(교수진을 비롯해)은 서울대가 가지는 그것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울대에 가지 못하고 K대 경영대에 입학한 학생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죽으라고 공부하는 이유는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이지 학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통계적 자료들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서울대에 연연하는 이유를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정, 차관급 공무원들을 비롯해 1~3급 공무원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습니다. 1~4급 공무원의 비율을 따지면 그 비중은 낮아지고, 정, 차관들만을 비교했을 때, 서울대 출신은 자그만치 60%에 육박하게 됩니다. 게다가 2002년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의 출신학교를 비교해 보면 서울대가 가지는 위력은 더욱 커지게 되는데 14명중 11명이 서울대 출신으로 80%를 가볍게 넘겨버리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간단한 통계로만 살펴보아도 서울대가 가지는 권력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할수록 서울대가 가지는 비율은 점점 더 커지고, 다른 대학들의 비율은 점점 감소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이 있다면, 서울대에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 졸업생들이 사회 고위직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라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에 자리 잡고 있는 학벌 이데올로기적 사상인데, 이는 권력의 독점을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후로 미루고, 만일 위의 말이 옳다고 한다면, 학문적 성과에서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 고려대나 연세대가 1~3급 공무원에서는 7%정도, 장, 차관직에서 각각 5%와 4%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대학서열체제의 모델인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도 이 정도로 한 대학이 정부의 고위직을 크게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국회의원의 경우, 서울대 출신 의원이 37.4%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의 도쿄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18.5%로 반 밖에 되지 않고, 미국의 경우에는 하버드 대학 출신이 5%도 안 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뛰어난 사람이 정부의 요직을 맡는 것이다.’ 라는 의견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학벌의 존재를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통계적 수치는 민간기업 및 방송계, 교수의 출신대학별 비율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민간기업의 경우 CEO의 출신대학 비중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지만 직책이 낮아질수록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방송계도 마찬가지이고 교수의 출신대학별 비율을 보면, 지방권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들 중에 서울대 출신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낮지만 소위 인서울 대학. 특히나 명문대로 올라갈수록 서울대 출신 교수의 비중은 커지게 됩니다.
이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이렇듯 출신대학 만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학벌은 우리나라만의 문제이고, 더욱 나아가서는 서울대의 문제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현대판 귀족제도. 학벌의 세습.
능력 있으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 노력만 하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피나는 노력을 할 경우에 서울대에 들어갈 확률이 아예 제로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입니다.
사교육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사교육이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거의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적 신분을 올릴 수 있는 사회가 아닌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공부였고,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들은 자녀에게 엄청난 사교육비를 투자합니다.
하지만 먹고 살아가기도 벅찬 사람들과 강남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이 자녀의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액수가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돈이 없어서 공교육에만 의존해야 하는 가난한 집의 자식들과 한 달에 150만원, 혹은 그 이상을 자녀에게 쏟아 붓는 부유한 집의 자식들의 격차가 크게 나타난 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 부모의 소득정도를 비교해 보면 서울대에 가기 위해선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돈 있는 집 자식들은 많은 돈을 들여 서울대에 입학하고 그 학벌(권력)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자식들을 가르쳐 서울대에 입학시킵니다. 반대로 돈 없는 집 자식들은 그런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서울대에 입학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벌 수 있는 돈은 한정되고, 다시 그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렇듯 서울대 학벌은 세습적이고, 현대판 귀족제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돈이 학벌을 만들고 그 학벌이 다시 돈을 만들어 있는 자는 계속해서 가진 자로 남고, 없는 자는 계속해서 없는 자로 남게 되는 순환 구조를 되풀이하게 되는 세습형 ‘권력’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4. 권력의 유지, 학벌 이데올로기.
권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정립합니다. 과거에는 핏줄로 인한 혈연(왕족 및 귀족으로 대표되는 대표자의 징표)를 중시했다면,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현재에는 혈연이 학벌로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똑똑한 사람이 지배계층에 앉을 수 있다. 라는 학벌주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내어졌고 현재 우리나라는 이런 형식의 학벌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드러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학벌주의 아래에서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그로 인해 학생들을 옭아매게 만드는 성적지상주의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육받는 것은 인성이나 도덕이라기보다는 성적으로 인한 차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적에 의한 차별은 사회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도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나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에서는 그것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심할 경우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인격적 모독을 당하기도 합니다.
학생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가능성은 성적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습니다. 물론 이론과는 다르게 학생들은 모든 가능성을 성적으로만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성적, 특히 수능성적만으로 일렬로 줄이 세워지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그 사람이 가지는 역량이 판단되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이 되는 것입니다. 일례로 엘리트주의를 비롯해 성적이 낮은 사람을 깔보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비약될 경우 성적이 나쁘거나 학벌이 낮다는 이유만으로(실제로 이 두 가지 경우는 동일한 경우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만) 인성과 가능성 모두가 폄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벌사회에도 소개가 되었다시피, 성적이 나쁜 사람들은 모두 악하고 못 된 사람들로 묘사가 되고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착하지만 성적이 나쁜 사람들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로 묘사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몇 가지 예로 간단히 뒤집을 수 있는데, 친구를 집단으로 따돌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학생들이 알고 보니 그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일종의 ‘모범생’ 들이었다는 것과 돈 있는 사람들이 고액탈세를 하고서도 뻔뻔하게 잡아떼는 것. 이 외에도 수 많은 ‘배운자들로 인한’ 범죄는 위의 논리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적지상주의의 생각을 가지고 성적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지배계층이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일부라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학생이 서울대 출신이 만드는 교과서를 보면서 자라고, 커서도 서울대 출신이 소개하는 책들과 서울대 출신이 만드는 TV를 보면서 알게 모르게 학벌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학벌은 학연과는 다르고, 학력차별과 학벌차별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접하기 쉬운 과외시장만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학교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뒀는가는 그다지 중요하게 평가받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 라는 것이고,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학벌위주의 이데올로기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학벌이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by 테사오TCT | 2007/01/12 12:56 | Thinking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empernita.egloos.com/tb/80083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