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 학벌과 사회적 주체성의 문제

LEFT 방중 세미나 두 번째

학벌사회 : 학벌과 사회적 주체성의 문제
1월 12일 금요일, 창의관 106호.

새해입니다. 새해에요. 알바 하느라고 정신없습니다. 다들 잘 살고 계신가요?

저번 세미나는 학벌이 권력과 연결된다는 것과 권력의 독점체계로 인해 학벌이 가져오는 불평등. 그리고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학벌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요, 이번 세미나에서는 학벌이 생성되는 이유를 사회적으로 풀어볼 거예요.

1.학벌 개념의 모호함
저번 세미나 마지막에 잠시 얘기가 나왔었던 학벌, 학연, 그리고 학력의 차이점. 사실 어떤 것인지 아직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전 세미나에서 학벌이 만드는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고, 학벌의 문제점을 알아보았는데요, 책에서도 언급이 되어있지만 학벌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것이 차별과 불평등의 장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서울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할 수도 있고 현상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죠. 특히나 학벌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구축된 지금의 현실은 서울대의 권력독점과 학벌문제를 다르게 이해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학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문제는 학연과 학벌, 그리고 학력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인데요, 소제목에서 드러났다시피 학벌은 모호한 개념으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정치를(혹은 권력을) 잡는 것이 당연하다. 서울대생은 똑똑하다. 라는 학벌주의적인 시각이 특히나 그것을 가속화시키고 정립화 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학벌문제가 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온다는 시각에서 뻗어 나오는 논리인데요, 서울대 출신이 타 대학 출신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공직 및 사기업의 입사시험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얻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서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벌이 이렇듯 형체 없는 개념이라면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는 열등한 사람들이(전 세미나에서 언급한 대로 시정잡배들이) 뛰어난 사람을 모함하기위한 중상모략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 말이 옳다면 학벌문제는 사이비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면 사람들이 제대로 구분 짓지 못하는 학연과 학벌은 어떻게 다를까요? 학벌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한 가지 짚어보면 ‘같은 학교 출신으로 이루어진 파벌’입니다. 하지만 만일 학벌이 정말 파벌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정말 학연과 구분하지 못하는 개념정리일 뿐입니다. 이것만으로는 학벌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죠. 이는 학벌은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죠. 역시 이는 학연과는 제대로 구분되지 않을뿐더러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학벌에 대한 확실한 실체를 알고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벌이란 한갓 이름뿐인 것으로서 학벌사회를 비판한다는 것도 죽어 있는 허수아비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 공동주체성
한국사회에는 학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는 학벌이 없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구분 지을 수는 없겠지만, 학벌이 한국사회의 문제이며, 한국사회 내에서 고유성을 가진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학벌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같은 학교 출신으로 이루어진 파벌’ 이라면 도대체 왜 독일에는 학벌이 없을까요? 대학이 있고, 출신 학생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학벌이 생성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학벌사회’의 저자는 그 차이를 ‘우리’ 라는 단어에서 발견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출신 혹은 재학하고 있는 학교를 ‘우리학교’ 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죠. 이런 차이에서 학벌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고려대에 입학하면서 우리는 ‘민족고대’ 라는 이름하에 고려대학교 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게 하고, 학교를 사랑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입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응원이고, 교가를 부르는 것이죠. 이런 장치 안에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비판의식도 가지지 않은 학생들은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며 자신이 그것의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연스레 대학교를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아닌 ‘우리학교’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학벌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소속감’을 지니도록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지요. 너와 나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학교를 나왔다. 라는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매개체로서 대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개인을 하나로 뭉치는 기제. 간단하게 사람들을 ‘우리’ 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드는 존재로서 대학이 존재하고, 이 안에서 학벌이 생성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학연은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학연안의 주체들이 ‘우리’로서 사고하기 시작할 때 학벌이 생성됩니다.
다시 학력, 학연과 학벌의 차이점으로 돌아와서, 학력은 개인적 이력이거나 능력으로서 개인에게 귀속하는 속성입니다. 학연은 그런 주체들 사이의 관계이고요. 하지만 학연은 그 자체만으로는 개인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중립적 관계에 불과합니다. A와 B가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상관성이 생기지 않는 다는 뜻이죠. 하지만 만일 A와 B가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우리’라고 묶고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할 때 학벌이 생성됩니다.
이렇듯 학력, 학연과는 다르게 학벌은 공동주체로서 사회적 실체로 존재하지만 단순히 사물적 실체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라는 공유된 집단의식으로 정체성을 유지할 때 정립되게 됩니다. 우리는 이처럼 학벌을 하나의 공동주체로서 만들어주는 우리의식을 학벌의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학벌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학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라는 공동체적 의식을 통해서만이 학벌이 성립되니 때문이죠. 학벌이 이처럼 자기의식을 통해 정립되는 한에서 우리는 학벌을 사회적 주체 또는 공동주체라 할 수 있습니다.

3. 학벌의 계보
조금은 어려운 주체성에 대한 개념은 잘 읽으셨나요?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 혹시 정리를 하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정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간과 인간은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겪게 되는 공동체이자 사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틀을 가진 것은 가정입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사람은 자기주체성을 성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이고, 이 공동체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보다 더 큰 공동체를 필요로 하게 되죠. 이것은 직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학교로 나타날 수도 있고, 이 외의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벌도 이런 공동체적 구조 안에서 사고 할 수 있을까요? 학교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대로 가족보다 더 큰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와 가족은 다른 공동체로 판단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출신학교를 모교라고 부릅니다. 母. 말 그대로 어머니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사 하는 바는 의외로 큰데, 학교가 단순히 학문을 위한 공동체적 공간이 아닌 가족적 공동체로 기능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초, 중, 고등학교의 12년간 학생은 가족에 품에서 벗어나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큽니다. 이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약 8년간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부에서만 주체가 되지만 이후에는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약 12년간 학교라는 새로운 공동체에서 주체성을 키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게 해주는 공간’ 이 학교지요.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학교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모교라는 말로 돌아와서, ‘군사부일체’ 라는 말이 뜻 하는 것처럼 스승은 부모, 그리고 선후배, 동기는 형제자매. 이처럼 학교는 단순한 사회적 공동체가 아닌 확장된 가족적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죠. 저자는 이것에 대해 유사가족공동체,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가족이 나의 사회적 존재의 바탕이 되는 것처럼 학벌이 사회적 존재의 바탕이 된다는 의미이죠.
이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절대적인’ 사회적 공동체인 가족의 품을 두려워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떠나 사회로 나가야 할 때, 가족을 대신할 만한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에는 가족적 유대가 최대한으로 확장되며 사실 국가나 회사의 경우는 그 성격상 가족적 유대가 형성되기는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가족적 유대가 강하게 형성되고 학벌로 이어지는 것이죠. 가족적 유대를 확인하지 못하고 정서적 불안감에 빠져들 때, 그런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교가 유사가족공동체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그리고 학벌이 왜 유사가족공동체에 대상이 되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회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만큼 유교적 사상이 강하게 사회를 지배해 왔던 시대가 있었고, 그 흔적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삶에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유교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가족주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강하게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군사부일체’ 라는 말이 시사 하듯 국가적 공동체와 가족적 공동체를 동일시 여기고 있었을 정도이니까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임금님을 대하는 마음이 부모를 대하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임을 내포하는 사상적인 ‘법칙’이 있었겠죠. 이렇듯 유교사회에는 가족적 이데올로기를 가장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서당으로 대표되는 학문기관, 사회적 공동체를 만드는 마을.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 까지 가족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개인적 주체를 만들기는 불가능 했고, 개인은 가족적 이데올로기 안에서만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가족적 이데올로기 안에 포함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키울 수밖에 없었고, 현재도 유교사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가족적 이데올로기 안에 포함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람들의 한 구석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족적 이데올로기와 학벌(정확하게 말하자면 권력)은 무슨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유교적 사회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과거시험’ 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비교해 보면 벌열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비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통계자료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역사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권력의 이양은 곧 가족적 권력의 이동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가족적 이데올로기와 권력은 떼려면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이런 현상이 가져오는 폐단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후에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가족적 이데올로기가 해체되는 현상을 겪었고, 해체되어버린 가족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과거 씨족 사회처럼 가족이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혈연적 관계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의 핵가족제도는 권력의 주체로 존재하기에는 너무나도 규모가 작아졌습니다. 이제 가족은 생존경쟁에서는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의 해체로 인해 개인의 ‘가족’ 이라는 보호막을 걷어낸 근대화는 그것을 대체할 만한 공동체를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사회에도 만연해 있듯이 국가와 그들이 하는 정치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고, 그것은 여러 가지 사례에서 보듯(625때의 정부의 행동,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처 등) 국가가 개인의 이득을 보장해 주리라고 믿는 것은 지나친 사치입니다. 이런 역사적 체험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국가의 보편적 이득보다는 가족적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가족적 이데올로기를 넘어 인륜적 공동체를 지향하기보다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를 가족적 공동체로 변화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너무 길어지네요. 여기서 줄이고 이 다음부터는 구두로 발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2의 가족. 학벌주의.
-한국 대학의 종속이유
-학벌의 탄생
-학벌이기주의와 공동체의 붕괴
-애교심과 동문애

1/지난 세미나에 이어서 학연, 학력, 학벌의 차이점에 대해서.
2/공동주체성. 사람이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공동체.
3/가족적 이데올로기와 권력은 어떠한 관계이며, 그것은 옳은 것일까?
4/과거, 수능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잡기위한 학문으로 인한 폐해.
5/대가족의 붕괴. 가족적 공동체를 대체하기 위한 학벌?
6/학벌이기주의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와 그 대책.

by 테사오TCT | 2007/01/12 12:56 | Thinking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empernita.egloos.com/tb/80083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7/01/12 12:58
고대 계꽈 시군요...ㅡ,.ㅡ;;;

last exit 뒤는 까먹었습니다..ㅠㅠ;;;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